
『고도를 기다리며』는 흔히 "기다림"이라는 단어로 정의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다림 뒤에 놓인 간절함이 더 먼저 생각났다. 책 속 두 주인공이 열렬히 기다리는 존재, 그 둘의 간절한 고도가 무엇일까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고도(Godot)는 누구인가?
그들은 왜 고도를 기다리는가?

이 책의 줄거리는 한 줄로도 표현된다. 두 명의 남자가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기다리나 그는 정작 등장하지 않으니, 이 대상이 바로 고도(Godot)이다. 그래서 고도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게 갈린다. 신(神), 미래, 꿈 등 무엇으로도 특정할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독자마다 각기 다른 고도를 기다리며 극을 보기도, 책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극이 상영되던 당시에도 관객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그들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작가 베케트는 끝내 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고도를 현실을 상실한 두 인간이 찾는 삶의 목적이라고 봤다. 주변을 떠돌며 의미없는 삶을 살지만 언젠가 그들이 추구했었고, 잠재적으로 희망하는 목적 말이다.
에스트라공: 만일 안온다면?
블라디미르: 내일 다시 와야지.
에스트라공: 그리고 또 모래도.
블라디미르: 그래야겠지.
에스트라공:그 뒤에도 죽.
블라디미르: 결국....
에스트라공: 그자가 올 때까지.
불려지지 않는 주인공들의 이름
극 속에서 두 주인공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름은 한 번도 불려지지 않는다. 단지 '고고'와 '디디'라는 애칭으로만 불려질 뿐이다. 희극으로 탄생한 책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관객은 두 주인공의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한 채 극이 끝난다.
왜 사무엘 베케트는 극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까? 이름이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으로 본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고도(Godot)의 이름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봤다. 극 속에서 두 주인공의 이름이 불려지지 않으면서 둘의 정체성은 점점 흐릿해지고, 대신 계속해서 불리는 고도의 이름이 더 명확히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 대비를 통해 관객들은 고도를 향한 그들의 간절함을 더 느낄 수 있다.
부조리극의 대표 작품『고도를 기다리며』

먼저, 부조리극이란 무엇일까?
부조리극
연극의 관례나 전통을 파괴한 반연극적 특성을 가진다.
주요 특징으로는 모순적인 등장인물, 대화의 혼란, 소통의 부재 등이 나타나며
부조리극의 주제는 불합리함 속에서의 인간이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설명이 어려워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여기에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주인공이 나온다. 이들은 늘 의미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돈, 전쟁, 사랑, 가족, 꿈 등 현대인들이 중시하거나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주제는 하나도 없다. 심지어 그들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지만 자신들이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도 알지 못한다.
블라디미르: 무슨 얘길 하는 걸까?
에스트라공: 제 인생의 얘기겠지.
블라디미르: 살았던 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지?
에스트라공: 그 얘기를 꼭 해야겠다는 거지.
블라디미르: 죽었으면 그만일 텐데
에스트라공: 그걸로는 부족한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미해보이는 대사 속에는 삶과 죽음,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있다. 언뜻 무의미해보이는 두 주인공의 대화 속에는 죽음으로도 부족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치 죽음 뒤에 무언가가 있을지 알 수 없어 인간은 죽음을 택하지 못한다는 햄릿의 대사처럼 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영상
사람은 가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지만 때로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도 잊은 채 표류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 순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의 심정을 깊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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